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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생활

제발 살아만 있어주세요.....

by robust_Lee 2008.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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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살아만 있어주세요





십대 문턱에 들어선 나는 투정하기 좋아하고 반항적인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갑자기 비뚤어지는 것에 많이 걱정했습니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상황이 불만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집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배운 것도 없이 가스회사에서 배달 일을 하는 아버지,

미싱 일을 하는 어머니도 보기 싫었습니다.
‘세상은 불공평해. 좀 더 좋은 부모,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괜찮게 산다는 집 아이들을 은근히 부러워하며 삐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집에 늦는 일이 잦아지고 대드는 일이 늘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나를 단단히 야단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착한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자식들을 야단칠 줄도 모르는 분이었죠.

엄마가 야단을 치면 아버지는 나를 몰래 불러내 돈을 주면서 맛있는 것을 사먹으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내가 따끔하게 잘 타일렀어. 다시는 엄마에게 대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하고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는 아버지.
‘흥!’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화낼 줄도 모르는 바보 아버지를 무시하면서도 주는 돈은 낼름낼름 받아 챙기는 아주 못된 딸이었죠.
이튿 날 아버지는 출근길에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주면서 수업이 끝날 때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날따라 고집을 피우셨죠.
점심 때쯤 집으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엄마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아빠 연락 없었니?”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왜?”
“가스 폭발 사고가 났다는데 아빠가 일하는 곳인 거 같아. 어쩜 좋으냐.”
순간 식은 땀이 났습니다. 급히 학교 전산실에 가서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정말 아버지가 일하는 가스 회사 이름이 신문에 나와 있었습니다.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면서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인적이 드문 운동장 구석으로 달려가 울었습니다.
“아빠만은… 우리 아빠만은 제발?살아 있어 주세요.”
그간 내가 아빠에게 했던 잘못들이 필름처럼 스쳐갔습니다.

친구들이 옆에서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날 수업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얘기하고 학교를 빠져나와 사고 현장으로 찾아갔습니다.
현장은 무시무시했습니다.

모든 버스가 사상자와 부상자를 실어나르고 있었고 차마 보기 힘든 모습들이 내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내 관심은 오로지 아버지뿐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빠! 아빠 어딨어요.”

그때 누군가 내 손을 콱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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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옆을 쳐다보니 아버지였습니다.

순간 나는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스배달 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카센터에 들렸다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유가족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기적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 사고 후 나의 사춘기는 막을 내렸고 더 이상 부모님에게 대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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