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상당히 오랫만에 아버지의 일기를 올린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 80년 1월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10여일 전 당신이 직접 기록하신 일기를 보면서 당시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아려온다.
1월 10일, 돌아가시기 13일 전.
자식이 자라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과거가 자식이었을텐데
늘 자식과 아버지는 마치 전혀 다른 개체인양 갈등을 하게된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위로는 어머님(깐돌이 할매)과 할머니(깐돌이 증조할매)가 계시고
아내와 아래로는 나이가 꽉 차 당해에 기필코 시집을 보내야만 하는 큰 딸,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셋째와 넷째 아들,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둘째 아들, 객지에 나가서 재수까지 하면서 4년을 공부한 큰 아들이 있다.
도합 아홉명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느끼는 무게와 부담이 가히 살인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집안의 형편을 생각해 큰 아들의 대학진학을 만류했고 큰 아들은 기어이 대학진학을 고집한다.
4년을 객지에서 공부시킨, 그것도 연로하신 어머님(깐돌이 할매)까지 딸려 보내서 뒷바라지 하게 한
집안의 맏이를 대학에 보내지 못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당신의 심정은 또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동안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늘 반듯하던 필체마저 이즈음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그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오죽하면 자식이라도 너무나 무심하다고까지 하셨을까?
그 와중에도 황송아지를 출산한 작은 기쁨이 있었다.
1월 16일, 돌아가시기 7일 전
아무도 아버지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가정형편은 감당이 불감당으로 절박하다.
그토록 엄하시고 빈틈없이 살아오셨던 아버지가 마침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시는 듯 하다. 그리고 이미 죽음을 예감하신 듯
가족들 모두가 불쌍해 홀로 눈물을 흘리신다. 당신 또한 혼자서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다.
1월 17일, 돌아가시기 6일 전부터 이틀전 까지.
깐돌이의 6년 저금이 5910원,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부끄럽고 한심하다고 스스로를 심하게 자책하신다.
그리고 1월 21일, 돌아가시기 이틀전.
<소한절후로 대단히 추웠다>를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기록은 영원히 끝이났다.
마침내 1월 23일, 돌아가신 날의 기록은 깐돌이의 큰 누나가 이었다.
그후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는 그 해 곧바로 아버지를 따라 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의 고민도 끝이났다. 그러나
그 때 남겨진 가족들은 아직까지 어떻게든 죽지않고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아버지, 보세요! 그렇게 절박하게 고민하지 않았어도 되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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