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풍으로 곡예비행을 겪은 뒤의 파리행 비행기 내 승객들 | |
얼마 전 죽을 고비를 넘긴 비행기 여행을 했다. 새해 들어 EU(유럽연합) 회원국이 된 불가리아로 취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체코의 프라하를 거쳐 파리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춰 곧 프라하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 직후부터 갑자기 비행기가 미친 듯 요동쳤다.
롤러코스터와 스카이콩콩을 탄 것처럼 기체가 좌우로,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렸다. 앞좌석에 붙은 간이 식판이 절로 떨어졌다. 승무원도 안전벨트를 꽉 붙들어 매고 자리에 앉았는지, 안내방송도 전혀 나오질 않았다. 몇 분 그러다가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30분 가량 지속됐다. 기내는 초긴장 상태였다.
악천후라면 회항했을 것이다. 밖은 화창해 보였는데 기체는 점점 더 심하게 요동쳤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체고장이 아닌가 싶었다. 프라하 공항을 향해 비행기가 곤두박질치는 순간, ‘아,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소중한 사람들한테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다.
비행기 바퀴가 간신히 활주로에 닿고 심하게 흔들린 끝에 힘겹게 속력을 낮췄다. 순간 숨죽이고 있던 승객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비행기에서 내려서야 이유를 알았다. 기내에서는 맑은 날씨처럼 보였지만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서있는 비행기 동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몇 시간 뒤 프라하를 떠날 때는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 강풍도 덜해졌다. 프라하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파리행 비행기에 탄 손님을 둘러봤다. 불과 몇 시간 전, 프라하행 비행기에서 나와 함께 그 끔찍한 불안감을 맛봤던 승객은 아니었다. 졸고 있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는 사람…. 지루한 일상의 표정이었지만, 조금 전 죽을 고비를 넘긴 내게는 그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 보였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 그 평범한 일상을 소중한 보물 담듯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날까지 땅바닥이 흔들거릴 정도로 멀미가 심했는데 내가 정말 사지(死地)에 있었다는 걸 다음날 아침에야 알았다. 그날 시속 140~150㎞의 강풍이 영국, 독일 등 유럽 북부를 강타했다. 내가 잠깐 들렀던 프라하 일대에는 무려 시속 183㎞의 돌풍이 불었다. 뿌리째 뽑힌 나무에 깔려 지나가던 승용차에 탄 사람들이 죽고, 바다에서 선박이 난파되고, 비행기는 물론 기차도 출발 못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 강풍에 47명이 죽었다. 비행기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죽다 살아난 그 유럽의 강풍을, 부장은 “원고지 1매짜리 단신기사로 보내라”고 했다. 수백 명, 수천 명 죽는 대형 국제뉴스에 비하면, 멀리 한국에서 보기에 47명 죽은 유럽의 강풍 뉴스는 단신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걸 원고지 1매에는 담을 수가 없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도 한순간이요, 언제든 예고없이 죽음이 닥쳐올 수 있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경험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짜증 내는 건 삶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머물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생이 단 5분도 안될지 모른다”고 느낀 그 순간, 나의 일상, 내 곁의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로 여겨지던가.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그 느낌을 되새기자고 다짐했다. 삶이 너무 단조롭고 심심하다고 ‘행복한’ 불평을 하는 사람에게 꼭 그 느낌을 나눠주고 싶어 이 글을 쓴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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