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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생활

엄마같은 선생님 '기적'을 만들다

by robust_Lee 2008.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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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같은 선생님 '기적'을 만들다
  2008/05/15 10:44
카페진      조회 147  추천 0

전교생 7명 폐교 위기 용전분교를 60명 학교로 키워
해남 김재남 교사

해남=오윤희 기자

 

"애기야, 니 언니 손 꼭 잡고 가야 헌다."

비뚤어진 학생 옷깃을 바로잡고, 손에 가만히 알사탕을 쥐여주는 모습이 영락없이 이모, 혹은 외할머니다.

전남 해남 마산초등학교 용전분교. 한반도 제일 끝자락 '땅끝마을'에서 차로 20분밖에 안 걸리는 외딴 곳이다. 13일 오후, 김재남(여·55) 교사는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그렇게 배웅하고 있었다.

옥수수·상추·호박이 자라는 텃밭이 운동장 한편에 있고, 향나무와 플라타너스에 감싸인 2층짜리 교사(校舍). 용전분교는 과학실·미술실 하나에 한 학년에 한 개씩 교실이 8개, 교사는 7명에 전교생 60명인 학교다.

지금은 제법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하지만 4년 전인 2004년만 해도 새로 입학한 신입생 2명을 포함해 전교생이 7명밖에 안돼 폐교 위기까지 몰렸던 학교다. 그럴 때 김 교사가 이 학교로 부임했다. 교사는 그를 포함해 단 둘이었다.

"학교가 아니라 무신 '전설의 고향' 같았당께. 풀이 이렇게 웃자라 있고, 비가 오면 지붕서 빗물도 새고…."

김 교사는 이런 학교를 자원했다. '어떤 곳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자신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선 정(情)에 굶주린 학생부터 챙겼다. 엄마가 없는 신애(가명·여·10)는 아이들에게 '왕따'였다. 김 교사는 그런 신애를 일부러 아이들 보는 앞에서 직접 씻기고, 머리도 땋아 주었다. 수시로 "선생님이 야 엄마여. 우리 딸 괴롭히지 말거라잉" 하며,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기도 했다.

미술학원은 꿈도 못 꾸는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스케치를 가르치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집으로 보내지 않고 들로 데리고 나가 수채화를 함께 그렸다. 차츰 아이들이 하나 둘씩 김 교사를 "학교 엄마"라 부르기 시작했다.

▲ 지난 13일 전남 해남 마산초교 용전분교 교정에서 김재남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김 교사는 자녀를 키우듯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를 되살려 냈다. 해남=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부임 이듬해인 2005년 3월, 용전분교엔 13명이 한꺼번에 입학했다. 전교생의 2배에 가까운 수였다. 학부모들이 나서서 "새로 온 김 선생이 보통 열심인 게 아녀. 애기들이 확 달라졌당께"라고, 읍내 초등학교로 아이를 입학시키려던 이웃들을 설득한 결과였다.

입 소문이 나자, 신입생들뿐 아니라 읍내로 떠났던 학생들도 하나 둘 돌아왔다. 이젠 30㎞ 떨어진 곳에서도 "여기만한 데가 없다"며 아이를 차에 태워 오는 부모, "내 새끼가 다닐 학굔디…"라며 포클레인을 끌고 와 꽃밭을 만들어준 아버지도 있었다.

폐교를 걱정하던 학교는 해마다 학급 수가 늘었고, 교사도 한 명씩 늘었다.

김 교사는 지난해 7월 한 학교 근무 연한을 다 채웠다. 하지만 다른 학교로 옮기지 않았다. 동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김 선생님이 떠나면 학교 문 닫는다"고 교육청을 찾아다니며 민원까지 넣었다. 김 교사도 "해마다 불어나는 아이들을 더 보고 싶어" 눌러 앉았다.

학부모들의 공치사에 김 교사는 쑥스럽게 말했다.

"그냥 애기들을 '내 새끼다' 생각했을 뿐인디, 그건 세상 어느 선생님도 다 마찬가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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