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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생활

뇌 다친 후 ㄱㄴ부터 시작… 야학교사 된 남자

by robust_Lee 2008.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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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다친 후 ㄱㄴ부터 시작… 야학교사 된 남자
  2008/04/23 10:26
카페진      조회 317  추천 0
  • 당신은 동반자같은 선생님
  • ● 야학 학생에서 인기 야학 교사 된 김승근씨
    교통사고로 뇌 다친후 입학… 고교·대입 검정고시 합격
    트로트 가사 이용 한글 가르쳐… 할머니 학생들 '환호'
  • 최수현 기자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22일 오후 6시30분 충북 청주시 청주대학교 대학문화관. 아줌마들의 신바람 나는 트로트 노랫소리가 캠퍼스에 울려 퍼졌다. '기초한글반' 팻말을 단 4층 강의실 안에서 손뼉 치며 노래 부르는 이들은 '무궁화 야간학교' 교사 김승근(52)씨와 아저씨·아줌마·할머니 학생 5명.

    노래가 끝나자 김씨는 '동반자' 노래가사가 적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며 말했다.

    "이게 이 노래 가사니께 한번 따라 써 봐유. 어때유, 재밌쥬?"

    한글과 알파벳, 사칙 연산 등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김씨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청주대 학생들이 무료로 운영하는 무궁화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야학 학생에서 곧바로 야학 교사로 변신했다.

    '재미가 있어야 공부도 된다'는 생각에 한글 공부는 '어머나' '무조건' 같은 트로트 노래가사로 하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서 중등반 학생들 중에 "기초반으로 옮기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 무궁화야간학교에서 김승근(오른쪽) 교사가‘늦깎이 학생’이영분(가운데)씨와 박정숙(왼쪽)씨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전재홍 기자 jhjun@chosun.com

    김씨가 2006년 초 야학에서 공부를 시작한 건 '못 배운 한' 때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30년 가까이 오토바이 대리점을 운영했던 그는 2004년 8월 새벽에 귀가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식 불명으로 누워있는 그에게 병원에선 '가망 없음' 판정을 내렸지만 김씨는 석 달 만에 눈을 떴다.

    뇌를 크게 다친 김씨는 처음엔 가족도 못 알아봤다. 글씨나 숫자를 잊어버린 것은 물론 말도 잘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재활운동을 하기 위해 집 앞 청주대 운동장에서 걷기 연습을 하던 어느 날 벽에 붙은 '무궁화 야간학교 학생 모집' 전단지를 발견했다. '머리를 다쳤으니 머리를 써야 재활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 길로 야학에 등록해 '기역' '니은'부터 다시 배웠다.

    공부를 하다 보니 한글도, 계산법도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고 후유증에서 회복이 덜 돼 집으로 가는 길도 종종 잊어버리는 그에게 공부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무조건 쓰고 통째로 외우는 식의 '무식한 공부'를 수없이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6년 4월 야학 등록 두 달 만에 김씨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황소 뒷걸음에 참새가 잡힌 격"이라고 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청주대 김윤배 총장에게 삐뚤삐뚤한 글씨로 편지를 썼다.

    '청주대 학생들이 열심히 가르쳐준 덕분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집에도 못 찾아가던 제가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지를 받아본 김 총장은 지하 셋방을 전전하던 무궁화 야간학교에 대학문화관 4층 강의실 6개를 내줬다. 1년 뒤 김씨는 대입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김씨는 합격 직후 교무실을 찾아갔다. "나처럼 가망 없던 사람도 해냈잖아유. 누구나 희망을 가지면 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유." 그는 기초한글반 교사를 자원했고, 대학생 교사들과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이은선 무궁화야학 교장(청주대 행정학과 3)은 "불편한 몸으로 어려운 과정을 겪어내신 김 선생님이 누구보다 학생들을 더 잘 챙겨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다. 사고로 시신경이 손상돼 물체가 둘로 겹쳐 보이고, 정신을 집중해야 겨우 제대로 발음할 수 있다. 아내가 김치찌개를 파는 작은 식당을 운영해 생계를 잇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 탓에 일도 돕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는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 아침 천천히 산에 오른다. 아무도 없는 곳에 닿으면 볼펜을 입에 물고 큰 소리로 신문을 읽으며 발음 연습을 한다. 집에 돌아와선 교재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찾아 신문과 여행책을 챙겨 읽는다. 출근은 오후 5시. 수업 시작보다 1시간 반 먼저 가서 일찍 온 학생들에게 간단한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김씨는 수업을 계속하면서 '까막눈'이던 72세 할머니가 영어로 이름을 쓰고, 글을 몰라 집으로 가는 버스도 못 탔던 아주머니들이 감사편지를 보내오는 '기적'을 체험한다고 했다.

    "지가 감히 누굴 가르치겠슈. 그분들 덕분에 오히려 지가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거지유. 지가 그분들한테 치료비를 드려야 하지 않나,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슈."

    • 무궁화야간학교에서 김승근(오른쪽) 교사가 ‘늦깎이 학생’ 이영분(가운데)씨와 박정숙(왼쪽)씨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전재홍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23/2008042300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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